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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만한물가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교회

  • 관리자
  • 조회 : 264
  • 2022.11.05 오전 10:15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교회

 

  지난 주일예배 후 한 성도님의 손주가 토요일(10.29) 저녁 이태원에 갔다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손주는 시간이 늦어져 다른 친구의 집에서 잠을 잤는데, 할머니는 이태원에 갔다는 소식만 듣고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의 그 거리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고, 누구나 지나칠 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앞으로 이 나라를 세워나가야 할 156명의 꽃다운 청춘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전에 몇 단계에 걸쳐서 사고를 막을 방법이 있었다는 소식에 탄식과 안타까움이 더해졌습니다. 안전불감증에 빠진 대한민국은 한 주간을 애도 기간으로 정하고, 모두가 슬픔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주가 지났지만, 온 국민이 비통함을 넘어 각종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핼러윈(Halloween)은 고대 켈트족이 악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인신 제사를 드리는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를 아는 기독교 일각에서는 매년 10월 마지막 날 종교개혁일과 겹치는 핼러윈 데이를 영적 전쟁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또한 핼러윈 문화가 대한민국에 퍼져가는 현상을 바라보며, 이교도의 행위라고 비판하곤 하였습니다. 아쉬운 것은 여기에서 우리 기독교가 새로운 문화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세대 간의 갈등만을 부추겼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태양신 숭배 사상에 젖어 있던 사람들에게 주후 350년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성탄절을 새롭게 옷 입혀 전 세계인의 축제로 만든 것처럼 문화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오늘날은 세대마다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표현이 다릅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기성세대에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우리의 다음세대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흔히 MZ세대라고 불리는 20~30대에서는 크리스마스 문화보다 핼러윈 문화가 더 많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그 문화 자체를 비판하기보다 더 아름다운 놀이와 축제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대안이 없는 비판은 많은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3장에서 실로암 망대에서 죽은 18명이 그들의 죄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고 하시면서 죽은 자들을 비판하는 자들에게 오히려 회개를 강조하셨습니다(13:4~5).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을 만났을 때 가장 훌륭한 해법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기보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새롭게 점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면 나의 유익보다 남의 유익을 함께 고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고전 19:23~24). 이태원 참사로 말미암아 한교총을 비롯한 많은 교회와 기관들이 희생을 당한 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목이 메었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대로 그들의 가족과 함께 울며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려고 애썼습니다(12:15). 그리고 몇 가지 기도 제목이 생겼습니다. 이제 견딜 수 없는 아픔을 또 다른 비난의 화살로 쏘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모아 대한민국과 다음세대의 내일을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아래의 기도 제목으로 기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첫째, 이태원 참사로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유가족들을 위로하여 주소서.

  둘째,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던 다음세대가 인생의 해답이 되는 예수를 발견하게 하소서.

  셋째, 다음세대에게 건강한 문화의 기반 위에 행복하고 안전한 나라를 물려주게 하소서.

 

담임목사 서계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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