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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만한물가

사랑이 논리를 이깁니다

  • 관리자
  • 조회 : 187
  • 2022.08.20 오후 02:57

사랑이 논리를 이깁니다

 

  오늘날의 사회를 보면 많은 사람이 자신이 처한 상황과 문화에 매몰되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생활합니다. 진보와 보수, 기성세대와 다음세대, 여성과 남성, 칼빈과 웨슬리 등의 대결에서 한 가지 가치를 선택하고 그 안에 갇히면 이제 더 이상의 판단을 유보한 채 지금까지의 생각을 변호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도 그랬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선지자의 전통을 철저히 따르고자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고 병자를 고치신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는 등의 율법도 누구보다 잘 지켰습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인 사두개인들은 부활과 내세를 믿지 않았으나, 바리새인들은 부활과 내세도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선 이러한 바리새인들을 향해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12:1)” 경고하셨습니다. 누구보다 율법을 준수하며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자 했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보고, 왜 예수님께선 바리새인의 누룩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바리새인은 613개의 조문으로 된 계명과 규례를 만들어 놓고, 열심히 율법을 따르고자 했지만, 그 저변(底邊)에 있는 율법 준수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20:8)’는 계명을 근거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을 박해합니다(5:16). 채소까지도 정확하게 십일조를 드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지만, 율법에 매여 어려운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지는 않습니다.

 

  바리새인의 율법 생활을 살펴보면 금식이나 십일조, 안식일 준수 등을 통해 신앙의 논리적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그 주변은 피폐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금식은, 이웃의 어려움을 돌보며 헐벗은 자를 돕는 것입니다(58:6~7). 그런데 바리새인은 금식의 논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사랑을 담지 못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일성수라는 미명 아래 주일에 한 번의 예배 이후에는 다른 일이나 공부를 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일을 지키는 듯하지만, 안식일에 하면 안 되는 오락을 구하고 있습니다(58:13). 신앙의 원리는 논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담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논리에 맞서는 예수님의 방법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을 들이대며 온갖 방해 요소들을 나열한다고 해도 더욱 사랑하면 이깁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요일 4:18)

 

  일을 잘하지 못해도, 논리가 부족해도 사랑을 가진 자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랑이라고 해서 다 같은 사랑이 아닙니다. 현상적 사랑이 쌓이면 쾌락을 누리려고 하는데, 본질적 사랑이 쌓이면 거룩을 이루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지만(딤전 6:10), 하나님을 사랑하면 성령님이 내주해서 거룩한 삶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논리가 나를 힘들게 할 때 주님의 사랑으로 한번 더 사랑의 경주를 달리십시오. 마침내 사랑이 논리를 이깁니다.

 

담임목사 서계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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