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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만한물가

얼굴을 튼 사이

  • 관리자
  • 조회 : 226
  • 2022.02.05 오후 01:08

얼굴을 튼 사이

 

  코로나가 수그러들 생각을 하지 않고, 3년째 계속되면서 서로의 얼굴을 마스크로 꽉 감싼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연일 확진자 수가 늘었다는 보도에 불안해하며 서로의 안전을 위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것을 최소한의 예의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마스크 착용은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미 얼굴을 알고 지내던 사이에서도 얼굴을 잊기 쉽습니다. 더군다나 코로나 이후 얼굴을 모르는 상황에서 만난 사이라면 더욱 마스크를 쓴 모습만이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마스크를 벗은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 우리 교회에 부임했기 때문에 성도님들은 설교하는 저의 맨얼굴을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저는 성도님들의 얼굴을 마스크로 감춘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참에 화장을 안 해도 되고, 마스크로 씻지 않은 얼굴을 가릴 수 있어서 참 좋다고 말합니다. 어떤 분은 이제 맨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하며, 어떤 분은 괜히 부끄럽기도 하답니다. 이 와중에 차(tea)를 같이 마시거나, 식사를 함께한 경우는 얼굴을 공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관계는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튼 사이가 됩니다. 얼굴을 튼 분들을 마스크를 쓰고 다시 만나면 더 반갑게 느껴집니다. 마스크 뒤로 숨은 얼굴이 그려지니까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얼굴을 트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게 되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33:20).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얼굴은 모두 상징이거나 천사로 대신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을 비롯한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거나 찾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그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다는 확신에 근거하는 기도입니다(대상 16:11; 42:2; 105:4).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면 기도 응답이 되지 않고 힘든 삶이 이어집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얼굴의 빛을 비추시면 눈앞의 문제가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22:24; 102:2). 기도 응답은 바로 하나님께서 얼굴의 빛을 비춰주시는 것으로 비유되곤 합니다.

 

  그래서 코로나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문제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때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도 응답을 통해 하나님과 얼굴을 트게 되면 그다음에도 쉽게 기도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계속 막혀 있으면 문제가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이제 눈을 들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과 얼굴을 튼 깊은 소통으로 문제를 지배하시길 바랍니다. 비로소 영적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12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초대교회 당시의 거울은 구리나 금속판의 표면을 갈아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선명하게 비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나 사물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희미하게만 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긴 보되, 희미하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시대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보는 것처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영적으로 얼굴을 트게 되면 마지막 때에는 반드시 주님의 얼굴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22:3~4).

 

담임목사 서계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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