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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만한물가

변화를 위한 몸부림

  • 관리자
  • 조회 : 213
  • 2022.03.25 오후 10:48

변화를 위한 몸부림

 

  우리나라에 한국전쟁이 있었던 1950년에 브라질에서는 월드컵축구대회가 열렸습니다. 당시 아시아를 대표해서 인도가 월드컵의 본선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도는 실제 경기에는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선수들의 보호를 위해 축구화 착용을 의무화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가 싶지만, 사실 1950년이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권의 생활이 아주 힘들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인도에서는 선수들이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운동하는 습관에 젖어 있었습니다. 맨발 축구에 익숙했던 인도 대표팀에게 축구화는 일종의 장애처럼 느껴졌을 뿐입니다. 그래서 인도 대표팀은 맨발로 월드컵에 참가하겠다고 요청했다가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월드컵 본선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처럼 익숙함이란 우리에게 편리와 발전마저 배척하게 하는 성향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특히 죄에 익숙해져 있는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은 일종의 장애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예수를 믿고 신앙의 길에 들어서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죄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그걸 편하게 생각합니다. 내 안에서 영과 육이 싸울 때, 육에 이끌리는 삶을 선택합니다. 이걸 뛰어넘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방관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신앙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죄의 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걸 뛰어넘지 않으면 결코 우리의 신앙이 자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변화를 위해 영적으로 몸부림쳐야 합니다.

 

  로마서 724절에는 율법 앞에선 바울의 중요한 고백이 나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나는 약하다는 겁니다. 내 원대로 되지 않는 비참한 현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곤고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까, 자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답을 찾게 됩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가능한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8:1). 나의 약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신앙은 성장합니다. 비참한 나 자신의 현실을 깨달을 때, 거룩에 이르는 길이 시작됩니다. 십자가 죽음으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들의 물질적인 능력을 영적인 능력으로 착각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3:17).” 우월감이 그들의 본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헐벗고 있지만 깨닫지 못합니다. 현상에 집중하고, 겉 사람의 상태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신앙입니다. 겉 사람은 시간이 문제이지, 언젠가는 모두 낡아집니다.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내 영혼이 먼저 맑아져서 속 사람이 강건해야 합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예수에 열광하고 바울에 열광하지만, 그 능력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예수와 바울을 앞세워 내 배를 불리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내게 손해가 된다 해도 예수나 바울의 길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능력입니다. 오미크론을 비롯한 코로나의 다양한 변이로 우리의 삶이 힘들어질 때, 오히려 넉넉하게 예수의 십자가를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겸손과 온유로 새로운 변이를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담임목사 서계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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